2025년 황금피켈상 시상식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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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선수처럼 운동하고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
알피니즘의 미래 보여준 알피니즘의 축하연
오영훈 (대한산악연맹 국제교류위원장)
기괴하게 치솟은 첨봉들. 깎아지른 절벽, 거대한 허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곳을 오르는 알프스 등산을 ‘알피니즘’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산세를 누비는 국내 등산과는 천지 차이다.
지난 12월 9~13일, 이탈리아 돌로미테의 작은 마을 ‘산 마르티노 디 카스트레차’에서 황금피켈상 시상식이 열렸다. 황금피켈상은 1991년 프랑스 산악인들이 만든 상으로, ‘한 해 최고의 알피니즘을 축하’하는 목적으로 매년 이어오는 세계 산악계의 꽃이다.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2025년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심사위원은 총 7명이었다. 20205년 9월부터 이메일로 심사를 진행했고, 시상식에도 초청돼 참가했다. 알피니즘을 선봉에서 열어젖히는 이들과 시상식 기간 사흘 동안 함께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산악인으로서 말도 안 되는 꿈만 같던 경험을 간추려본다.
(사)부산산악포럼의 진취적인 등반 관련 활동을 지원하는 ‘서성호 기금’에서 참관을 위한 여행경비 일부를 지원해줬고, ㈜파타고니아코리아도 약간의 물품을 지원해 주어 감사드린다.
황금피켈상 상패. 황금으로 된 피켈을 상패로 주던 관행이 과거에 있었으나 지금은 피켈 문양이 들어간 상패만 준다. 등반팀당 하나만 주므로, 3명이었던 야시쿡 사르 등반팀은 귀국 후에 모조품을 만들어 나눠 가지겠다고 했다. 사진 표트르 드로츠.
이중 구조의 심사 과정
황금피켈상은 ‘산악계의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린다. 직전 해의 최고 알피니즘 등반을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심사 체계는 이중 구조다. 7명의 ‘기술 심사위원단’은 매년 바뀌는데, 바뀌지 않는 핵심 주관자 3인방이 있다. 이들은 조직위원장인 크리스티앙 트롬스도르프(프랑스 엘리트 산악인 단체 GHM 회장)와 후보군을 추리는 린지 그리핀(미국산악연감 선임편집인), 로돌페 포피어(히말라야데이터베이스 연구원)이다. 그중에서도 그리핀이 후보 선발, 심사위원 구성을 주도하는 숨은 실세다.
심사 과정은, 먼저 70여 건의 ‘롱리스트’ 후보군을 추려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 롱리스트에는 히말라야 고산의 등반만이 아니라 알프스, 안데스, 그린란드 등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등반이 고루 분포해 있다. 이 후보군을 본격적인 후보군인 20여개 팀의 ‘미디엄 리스트’로 다시 추린다. 각 등반에는 자세한 등반기도 딸려 있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기술 심사위원단은 이 후보군 등반을 꼼꼼히 살펴본 뒤 각자 3~4개씩 선정해서, 그 결정을 취합함으로써 최종 수상팀 2~3팀이 결정된다. 수상팀은 시상식 1~2개월 전에 공표된다. 시상식에는 수상팀과 주요 산악인, 기자단이 초청돼, 수상팀의 등반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심사 기준은 등반의 스타일, 전념 정도, 탐험심, 기술적 능력, 합리적인 루트 선택 등이며, 여기에 등반 내용을 투명하게 밝혔는지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황금피켈상 시상식이 열린 이탈리아 돌로미테의 관광 도시 산 마르티도 디 카스트레차. 2024년부터 2년 연속으로 개최됐다. 사진 김혜경.
투명성은 등반의 생명
필자가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까닭은 그리핀이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리핀은 70세가 넘은 영국인으로 세계 산악계의 숨은 ‘백과사전’이다. 국내 산악계에도 ‘백과사전’이 있었다. 2018년 등반 중 사고로 고인이 된 김창호다. 김창호는 생전에 히말라야 등반 연구 결과 두어 편을 미국산악연감에 기고했는데, 그 글을 필자가 번역하면서 그리핀과 인연을 맺게 됐다.
김창호 작고 뒤, 김창호의 2003년 파키스탄 연속 단독등반을 필자가 미국산악연감 2024년 호에 기고했다. 그러면서 그리핀을 포함한 외국 등반가들이 김창호와 한국의 탐험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그리핀은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김창호의 탐사 내용이 못내 궁금한지 필자에게 김창호의 전기를 쓰라고 계속 종용하고 있다.
다른 인연으로, 그리핀이 네팔 등반 역사를 정리하는 글에 대해서도 필자가 지적한 일도 있었다. 1980년대의 무허가 등반, 네팔~중국 무단 국경 횡단 등반 일화를 영웅시하듯 묘사하는 부분에서, 필자는 ‘불법적으로’, ‘몰래’라는 표현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등반이 현지 문화·법규로부터 벗어난 행위가 아님을 각인하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물론 그리핀은 그 제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쓰라린 기억이지만 작년 제주연맹의 샤르푸 5봉 초등 주장을 둘러싼 소동에서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위를 찾으려 노력했다. 아마도 ‘등반의 투명성’에 대한 노력을 이렇게 함께 해 왔으니 필자를 추천했던 것 같다.
일본과 중국의 약진
심사위원단에는 매년 동양인이 꼭 끼어 있었다.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일본팀은 2009년 이후 6차례나 황금피켈상을 수상하는 등 현대 알피니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국이다. 한국인 심사위원으로는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영향력을 끼쳤던 임덕용, 황금피켈상 아시아를 주관했던 『사람과 산』의 기자 임성묵이 한 차례씩 활약했다.
황금피켈상 수상은 서구권이 독식해왔다. 2009년부터 일본이 단골 수상국으로 등장한 게 최근의 변화다. 올해는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중국인 수상자는 아직 없었지만, 올해 후보군 롱리스트에 총 9건이, 미디엄 리스트에 1건이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모두 중국 영내에서의 등반이긴 했다.
쓰촨성을 중심으로 몇몇 신흥 등산학교의 역할이 주효했던 까닭이다. 알피니즘에 집중하는 전문 잡지는 없지만,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황금피켈상 시상식에서 등반가들과 심사위원단, 현지 가이드 협회 임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사진 표트르 드로츠.
“승자란 없다. 수상자만 있을 뿐.”
트롬스도르프 위원장의 말이다. 황금피켈상은 ‘남보다 대단’하다는 의미의 경쟁이 아니라, ‘남을 통해 영감을 받는다’는 의미에서의 경쟁이었다. 필자도 ‘이제라도 제대로 등반해 봐야지’라는 마음이 몇 번이나 들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김창호·최석문·박정용이 2016년 강가푸르나 남벽 신루트 등반으로 특별상을 받았다. 그 수상을 두고 김창호는 한국 산악계의 일종의 ‘한풀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 산악계는 인정을 목말라 했다. 필자도 ‘황금피켈상을 받고자’ 대단한 등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황금피켈상이 ‘최고 가리기’가 아니라 ‘등반의 축하’로 변화된 것은 2009년이었다. 그전까지는 경쟁도 심했고, ‘등반은 경쟁이 아니다’라며 수상 거부자도 속출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상팀을 미리 공개하는 형식도 두두두둥 발표하며 경쟁감을 돋구는 전형적인 시상식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서다. 수상팀도 하나가 아니라 2~4팀으로 확대됐다.
알피니즘은 라이프스타일
올해 수상자는 본상 세 팀, 특별상 한 명, 평생공로상 한 명, 여성특별상 한 팀이다. 여성특별상은 작년부터 생긴 분야다. 이제껏 여성이 본상을 수상한 경우는 2009년 케이 타니구치(일본) 말고는 없었다. 여성이 과소 대표되는 것을 피하고자 생긴 제도다. 실제로 여성도 대단한 등반을 많이 한다. 수상자 슬로베니아 여성 2명은 탐험적이고 모험적이며 상당히 수준 높은 등반을 결행했다.
평생공로상은 러시아의 ‘영원한 대장’ 알렉산더 오딘초프(1957년생)가 수상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 러시아 산악계를 재정립한 핵심 인물이다. 우리나라 산악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필자에게는 어린 날의 우상이기도 했다. 등반 인생 50여 년 동안 신루트 30여 개를 개척했다. 특히 거벽 10곳을 오르는 ‘러시안웨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10개 중 9개를 등정했고, 그중 8개는 알파인스타일 또는 캡슐 스타일로 대범한 등반을 성공했다.
평생공로상 수상자 알렉산더 오딘초프(좌)와 심사위원장 린지 그리핀(우). 오딘초프는 대단한 애주가로 와인을 끊임없이 마셨다. 오딘초프는 등반 중에 정신적 컨트롤을 위해 러시아 고전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했다. 사진 크리스티앙 트롬스도르프.
본상 수상팀 중 미국 2개 팀은 전형적으로 대단한 탐험성을 발휘했다. 하나는 파키스탄에서도 거의 등반이 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국경 인근에서의 등반이었다. 데인 스테드먼 등 3명은 야시쿡 사르(6,667m)라는 미등봉을 거대한 눈처마를 피해 등반했다. 다른 하나는 네팔 서부의 무척 외진 칸티 히말의 최고봉 카쿠르 캉리(6,859m)로 스펜서 그레이 등 2명이었다. 두 팀 다 해당 국가로의 등반이 처음이었고, 대상지 선정 과정도 같았다. 먼저 구글어스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봉우리를 발견한 뒤 미국산악연감에 검색해서 정보를 찾았다. 이 두 팀 대원 5명은 20~30대로 전체 게스트 중에서 가장 어렸다.
파키스탄의 야시쿡 사르 등반 루트(적색) 및 하강 루트(노란색). 상당히 가팔라 보이고 위험해 보이지만 눈사태 경로를 피해가면서 안전하게 등반했고, 등반과 하강 모두에서 완벽한 등반이었으며, 자료를 찾아 준비하는 과정부터 모험성을 잘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대원의 연령이 27~35세인지라 무척 젊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사진 데인 스테드먼.
네팔 서부 가쿠르 캉리(6,859m) 등반 루트. 일본팀이 초등한 산으로, 아주 적은 자료만 가지고 찾아가 대단한 등반을 성공했다. 사진 스펜서 그레이.
세 번째 팀인 가셔브룸3봉(7,925m)은 대단한 등반팀이었다. 알레시 체센(슬로베니아, 43세), 톰 리빙스턴(영국) 2인조였다. 해발 7,800m에서 절벽에 매달려 눈 맞으며 비박하고, 7,900m에서 M6급 믹스등반을 구사했다. 체센은 이로써 황금피켈상을 네 번째 수상하게 됐다. 체센은 목소리에 힘이 있고 대단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황금피켈상 다회 수상자는 여럿이다. 폴 램스덴(영국)이 5회로 최다 수상자이고, 체센 외에 마르코 프레제이(슬로베니아)와 카즈야 히라이데(일본)가 각 4회, 믹 파울러(영국)와 켄로 나카지마(일본)가 각 3회 수상했다. 2회 수상자는 10명이다. ‘알피니즘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명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가셔브룸 3봉(B)의 등정(붉은색) 및 하산 루트(노란색). A는 가셔브룸 4봉(7,925m)이고 C는 가셔브룸 2봉(8,035m)이다. 8천 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높이로 통틀어 등반대가 총 4차례 찾았을 뿐인 인적 드문 산이다. 사진 자첵 빌토신스키.
가셔브룸 3봉의 해발 7,900m 부근에서 M6급 고난이도 믹스 등반을 펼치고 있는 톰 리빙스턴. 사진 알레시 체센.
알피니즘은 삶이자 대를 이어간다. 알레시 체센의 부친은 전설적인 등반가 토모 체센(1959년생)이다. 1990년 ‘히말라야 최후의 난제’로 불리던 로체 남벽을 62시간 동안 단독으로 등반했다고 주장해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정상의 사진이 의심받으면서 정점에는 서지 못했으리라고 평가된, ‘세기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특별상 수상자 벵자맹 베드린(우), 본상 수상자 알레시 체센(가운데), 2007년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의 알파인스타일 등정으로 본상을 수상했던 스티브 하우스(좌). 사진 시아종밍.
패러글라이딩 활강은 샤모니 ‘인싸’ 등반
‘현대 알피니즘의 미래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은 수상은 특별상의 벵자맹 베드린(33세)이다.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2022~2024년에 알프스를 중심으로 알피니즘(등반)만이 아니라 스키, 패러글라이딩, 단독등반, 속도등반 등을 접목해 최고 수준의 등반을 펼쳤다. 황금피켈상 역사상 알프스 등반을 시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3년 동안 대단한 등반을 펼쳤는데 몇 개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알프스 3대 북벽 직등 루트 완등, 드류~드로이테~그랑드조라스 북벽의 M7~8급 루트 연속등반, 파키스탄 브로드피크와 K2에서 각각 최단시간 등정 후 패러글라이딩 활강 하산 등등이다.
베드린의 등반은 그야말로 21세기 신개념 등반의 정수를 보여준다. 우선, 엘리트 선수 수준의 운동능력이다. 쉽게 말해 지금 시대 제대로 된 고산등반을 하려면 암벽등반 5.13급을 하면서 엘리트 수준의 트레일러닝 능력을 지녀야 한다. 훈련량은 차원이 다르다. 율리 스텍(스위스), 킬리안 조넷(스페인) 등이 그 선구자다.
베드린은 홍보 매니저는 물론 전속 훈련 코치, 심리 상담가를 거느린 ‘인간 기업’이다. 등반에 나서기 전에 이들로부터 신체적·정신적 훈련을 받는다. ‘알피니즘 스포츠’에서 마인드 컨트롤은 특히 중요하다. 왜 오르는가?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나? 위험, 고난, 목표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명확하고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면 긴박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특히 베드린은 패러글라이딩을 등반에 접목했다. 10시간 만에 K2 정상까지 올라간 뒤, 패러글라이딩으로 활강해 내려왔다. 하강용 패러글라이더는 겨우 1kg에 불과하다. 하산을 대비한 무거운 짐 없이 가볍게 오르고 빨리 내려올 수 있는데 패러글라이딩 활강이 논리적인 정답이지 않느냐고, 베드린은 말했다. “요즘 샤모니에서 패러글라이딩 하지 않으면 20~30대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기는 어렵다.”고 했다.
알레시 체센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패러글라이딩을 배운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이 늘면 베드린처럼 정상을 오른 뒤 활강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실제로 행사 둘째 날, 단체 행사로 뒷산 로제타(2,743m)에 올랐다가 다들 케이블카로 내려오는데 베드린, 체센은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왔다. 행사 기간 내내 베드린은 아침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뒷산을 왕복했다.
네팔 서부 카쿠르 캉리 등반 수상팀 스펜서 그레이(오른쪽 2번째), 라이언 그리피스(가운데) 및 이들에게 시상한 시장(제일 좌측)과 빅터 손더스(왼쪽 2번째, 74세 등반가), 필자(제일 우측). 사진 표트르 드로츠.
우리나라의 모험 등반을 위해
알피니즘은 모험이다. 알프스에서 알피니즘과 투어리즘은 너무도 확연히 구분된다. 산 마르티노 디 카스트레차 시 관계자도, 행사 유치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는데 그 이유는 19세기 말부터 이 마을에 알피니스트가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발달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황금피켈상은 마을의 역사와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산을 모르고 언저리만 맴도는 투어리스트만 있었다.
돌로미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유네스코 돌로미테 재단 대표도 왔는데, 알피니즘은 돌로미테 산악지대의 산 역사이자 제일가는 파수꾼이므로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는 어떤가? 필자는 지난 11월 <한국등산연구소 세미나>와 <한국히말라야펀드 워크샵>을 통해 최신 알피니즘을 공유하는 발표를 했다. 두 행사 모두 모험적인 알피니즘을 육성해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분위기는 알피니즘의 모험을 본격적으로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국내에서 알피니즘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위험을 무릅쓴다’는 모험 등반은 죄악시되고 있다. 국내 산악계는 스포츠클라이밍과 일반 하이킹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해외등반에는 모험과 탐험은 없고 정상, 체험, 기록만 중시되는 게 현실이다. 초석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물론 그 초석은 높이와 명성이 아니라 운동과 탐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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